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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베이비박스가 없는 나라를 위해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19-06-20   /   Hit. 3578

2019년 6월 19일 한겨레21 에 실린 기사입니다.

 

베이비박스가 없는 나라를 위해 ?

 

 출생신고 가명으로 할 수 있는 비밀출산제 제안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 인터뷰

 

2005년 정부가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5월11일을 ‘입양의 날’로 제정했다. 2011년부터는 입양인과 미혼모, 한부모 단체가 5월11일을 ‘싱글맘의 날’로 기념했다. 2018년 정부가 ‘원가정에서 아이가 양육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입양보다 우선’이라는 취지를 수용해 5월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제정했다. 기념일 제정의 사회적 목표를 달성한 ‘싱글맘의 날’은 올해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줄곧 소란스러웠던 두 기념일의 불편한 동거가 9년 만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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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두 법안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한 두 활동가의 삶과 이야기에 주목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듯하지만 ‘아동 최우선의 원칙’을 공유한 두 사람이 접점을 찾는다면, 한국 사회가 위기 가정과 위기 아동 지원을 위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에서다.

 

  


 

산에서 혼자 출산한 소녀가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파묻으려고 구덩이 안에서 몸을 풀었다. 막상 울음소리를 듣고 나니, 아기를 묻을 수는 없었다. 소녀가 ‘태반과 탯줄도 떼지 않은 흙 묻은 아기’를 안고 맨발로 달려온 곳은 서울 관악구 난곡로 주사랑공동체 베이비박스(위기영아긴급보호센터)였다.

베이비박스는 ‘참혹한 영아 유기 범죄 현장’이며 베이비박스 때문에 오히려 유기가 늘어난다는 주장이 있다. 언론이 베이비박스를 ‘미담’으로 세상에 알려선 안 된다는 쓴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올해로 꼭 10년, 6월13일 현재 총 1594명의 아기를 베이비박스에서 보호한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말한다. “이 엄마들은 아기를 버린 게 아니에요. 열 달 동안 아이를 지켰다가 아이를 살리려고 베이비박스로 데려온 겁니다. 죽었을 수도 있는 아기, 아무 데나 버려졌을 수도 있는 아기 1600여 명이 베이비박스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았어요.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베이비박스 찾은 72% 이유 ‘출생신고의 어려움’

 

 

2009년 베이비박스를 만들어 2010년 3월 첫 아기를 받았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 수는 2010년 4명에서 2011년 35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 2015년 242명, 2016년 223명, 2017년 210명, 2018년 217명으로 최근 주춤하지만 길게 보면 늘고 있는 추세다. 이 목사는 주요 원인으로 2011년 개정돼 2012년 시행된 ‘입양특례법 전부개정안’을 꼽는다. 입양 전 출생신고가 의무화되자 어린 미혼모들이 아기를 아동양육시설에 맡기지 못하고 베이비박스로 데려온다는 설명이다.

“청소년 엄마들은 출생신고를 하면 퇴학당하고 불이익을 받아요. 이 엄마들은 굉장히 급하단 말이에요. 몰래 안전하게 아기를 보호한 뒤 빨리 집에도 들어가고 학교로 돌아가야 해요. 그런데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기를 보호할 수 없어요. 콜센터에 전화해도 출생신고를 해야 도와줄 수 있다고 해요.” 실제 2017년 1~8월 베이비박스를 찾아 상담받은 친생부모 128명 중 92명(72%)이 베이비박스를 찾은 주된 이유로 ‘출생신고의 어려움’을 꼽았다. 이 목사는 입양특례법 탓에 낙태되거나 출산 직후 살해되는 아기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통계로 드러날 수 없지만 내가 직접 부닥치고 체험한 현실”이라며 “현장에 와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통계가 없다며 ‘영아 유기·살해가 늘지 않았다’고 현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 운영 경험이 쌓이면서 운영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초기엔 엄마가 몰래 베이비박스에 두고 가는 아기를 아동양육시설로 보내는 형태였다. 지금은 94%의 엄마들이 베이비박스 옆 상담벨을 누르거나 베이비룸에 아기를 안고 들어와 상담부터 받는다. “엄마들이 상담하면서 위로받고 마음을 바꿀 때도 많아요. 한 엄마는 고등학생인데 졸업하고 아기를 찾아가겠다고 하더라고요. 졸업까지 몇 년이 남았느냐고 물었더니 1년5개월이래요. 키워줄 테니 약속을 지키라고 했죠. 그랬더니 정말 졸업 뒤 아기를 찾아갔어요.”

지금까지 아기를 한시적으로 맡겼다가 찾아간 엄마가 87명에 이른다. 아기를 키우고 싶은데 거주할 곳이 없는 엄마들은 주사랑공동체 선교관에서 아기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 선교관에서는 엄마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학업과 취업을 전방위로 돕는다. 지금도 선교관에서 20여 명의 엄마가 아기를 키우고 있다. 아기와 함께 살 공간은 있는데 생활비가 막막한 엄마들도 있다. 이럴 때는 주사랑공동체에서 3년간 매달 생활비 20만원과 육아용품을 지원한다. ‘베이비 키트’라는 육아용품 세트에는 쌀·기저귀·분유·옷·장난감·유모차 등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생필품이 총망라돼 있다. 현재 87가족, 지금까지 280가족을 지원했다. 이 예산만 연간 3억원에 이른다. 주사랑공동체가 이런 식으로 친생부모 품에 다시 안겨준 아기가 30% 정도 된다.

 

유기아동 보호에서 미혼모 지원으로

 

 

안타깝게도 나머지 70%는 엄마 품을 떠난다. 주사랑공동체의 설득으로 엄마가 출생신고를 해주면 입양기관으로 보내져 입양 절차가 개시된다. 출생신고를 못한 아기는 아동양육시설로 보낸다. 6개월간 친생부모가 아기를 찾아가지 않고 아기를 입양하겠다는 입양부모가 있으면, 시설 원장이 후견인 권한을 포기해 입양 절차가 개시된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아동양육시설에 맡겨진 아기를 친생부모가 되찾아가는 일도 꽤 많다. 최근 4년 만에 친엄마가 아기를 찾아간 사례도 있다. 아기가 있는 곳을 찾기 쉽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찾아간 아이가 90~100명, 경찰에 직접 물어 찾아간 아이까지 합하면 120여 명에 이른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면서 단지 유기아동을 살려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위기 임신부터 출산과 양육까지’ 정부가 무조건 책임지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10대 미혼모 아기, 외도로 태어난 아기, 이혼소송 중에 태어난 아기,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출생신고가 안 돼요. 이 아이들은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가요?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을 품을 수 있는 사랑의 법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지난해 2월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안’(이하 오신환 의원 법안)에는 이 목사의 이런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겼다.

오신환 의원 법안은 위기 임신부터 양육 지원까지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비밀출산제 도입’에 있다. 친생부모 출생신고제의 당위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뒤따르는 부작용의 대안으로 볼 수 있다. 법안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곤경에 처한 임산부를 지원할 수 있는 책임 및 비밀출산을 위하여 필요한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나아가 비밀출산을 지원하기 위한 상담기관을 설치·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상담기관은 비밀출산으로 출산하게 되는 영아의 출생증서를 작성하여야 하며 영아의 출산 직후 가정법원에 출생증서를 제출하도록” 한다. 출생증서에는 친생모의 성명·주소, 자녀 이름·출생 일자·출생 장소, 상담기관의 명칭과 담당자 이름 등이 기재된다. 상담기관은 출생증서를 작성한 뒤 친생모의 가명으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 목사는 “비밀출산제는 아기도 보호하고 엄마도 보호하는 방법이며, 아이들이 친생모 가족관계등록부에 기재되지 않고도 아동양육시설에 가지 않고 입양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긴급영아일시보호소 거쳐 자립지원센터 꿈

 

 

오신환 의원 법안에는 이 밖에도 긴급영아보호소 설치와 운영, 친생모가 아기를 양육할 경우 친생부에 대한 양육비 청구 제도, 한부모가족 지원 제도에 관한 정보 제공, 전문적인 입양 상담, 입양 확정 전 친권 회복 조항 등을 담았다. 이 목사는 “궁극적으로 ‘베이비박스가 없어도 되는 나라’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법과 제도와 행정이 바뀌어 작은 자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 미혼모를 멸시하고 천대하고 소외시키지 않고 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꿈꾼다. 그러나 “그 전까지는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고 길에 쓰러진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는 심정으로 베이비박스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주사랑공동체는 위기영아와 미혼모를 보호할 의무도 책임도 없다. 부모가 못하는 일, 국가가 안 하는 일을 단지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떠맡아 돕고 있을 뿐이다. 이 목사는 “주사랑공동체는 우리나라 최대 미혼모·위기영아 지원단체”라며 “우선은 정부에서 긴급영아일시보호소 허가를 해주면 좋겠고, 장기적으론 일산에 미혼모 자립지원센터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 목사는 건축비가 마련되는 대로 경기도 고양 일산에 있는 땅 1500여 평(약 4959㎡)에 자립지원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미혼부모들이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며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아울러 미혼부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자체 브랜드를 제작하는 공장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이 목사는 “한 사람이 열 사람이고, 열 사람이 백 사람”이라고 믿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 백 사람을 살릴 수 없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목사가 곤경에 처한 부모와 자녀들을 돕는 이유이기도 하고, 스스로 ‘한 사람’을 섬기는 심정으로 장애인 9명을 입양한 이유이기도 하다.

 

 

입양아동 학대는 전체 학대의 0.02%

 

 

당연히, 그는 입양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여긴다. 원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것이 최선이지만, 아동양육시설보다는 입양이 차선이라고 믿는다. 간혹 입양가정의 자녀 살해나 아동학대가 부각되면서 사회적 논란이 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수치는 전체 아동학대의 0.02%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 아동학대는 입양가정이 아닌 원가정에서 친부모에 의해 벌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원가정 아동학대 비율이 높다고 원가정을 해체해선 안 되는 것처럼, 일부 입양가정의 문제 때문에 입양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 목사는 “어떤 색깔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인다”며 “해외입양이든 국내입양이든 비율로 보면 잘 자란 아이가 더 많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입양 때문에 잘못된 경우는 사회적·인도적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원문 :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7226.html

출처 : 한겨레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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