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으로 생긴 베이비 박스를 두고 논쟁이 뜨겁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도 하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므로 전국적으로 확대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미국 LA타임즈에 소개되고, 미국의 대학생들이 베이비 박스를 소재로 단편영화를 준비하고, 연예인들이 베이비 박스를 후원하는 등의 분위기를 볼 때 베이비 박스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은 별로 설득력을 얻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나 역시 베이비 박스는 일종의 긴급생명구호장치라고 생각한다. 베이비 박스 때문에 키울 아이를 버려야겠다고 결정할 사람은 없다.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기로 한 결정은 이미 아이를 포기하기로 한 결정 다음에 온다. 베이비 박스는 어떤 이유에서건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최소한의 생존마저 어려운 상태에 놓인 부모에게 주어진 마지막 남은 선택이다. 베이비 박스에 놓이는 아이가 늘어간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여기가, 지금 이 시대가 적어도 아이들이 비정하게 버려지는 곳은 아니라는 위안을 여지없이 깨트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비 박스는 현재 한국 사회의 재생산 시스템의 작동 오류를 알려주는 일종의 빨간 불이다. 작동 오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베이비 박스는 그간 포털의 선정적 기사 제목으로만 등장하던 “갓난아이 생매장하려던 20대 미혼모”, “지하철 화장실에서 탯줄 달린 채 발견 된 아기”들의 삶이 직접 연루되고, 그들의 삶을 우리 일상의 한 부분으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한줄 기사와는 다른 무게와 울림을 갖는다. 내가 늘 다니던 골목길에 베이비 박스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베이비 박스 이야기
베이비 박스는 이미 미디어를 통해 많이 알려진 것처럼 2009년 서울 관악구의 ‘주사랑공동체’에 설치된 시설물이다. 이 공동체의 이종락 목사는 누군가가 굴비 상자에 아이를 넣어 주차장에 두고 가는 바람에 새벽 찬 공기와 길짐승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질 뻔 했던 일을 겪은 후 방법을 찾다가 체코와 독일 등에 베이비 박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현재와 같은 장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2009년 12월 베이비 박스를 만들고 나서, 2010년 3월 30일 처음으로 베이비 박스를 통해 아이가 공동체에 들어왔다. 이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면 그 후로 2013년 2월까지 70여명의 아이들이 베이비박스를 거쳐갔다(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아이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베이비 박스에 아이를 놓고 가는 부모들은 가능하다면 아이가 현재 베이비 박스가 설치되어 있는 공동체에서 양육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2011년 3월부터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는 유기된 아기로 경찰과 관할 구청에 신고를 하여야 한다. 따라서 베이비 박스를 통해 들어왔던 아기들의 대부분은 이미 다른 시설로, 입원치료가 필요한 아기들은 병원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나거나 하는 방법으로 각자 다른 길을 갔다. 간혹 부모 혹은 친인척이 아이를 다시 찾는 경우도 있다.
베이비 박스의 논쟁이 재점화된 것은 2012년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 이후였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아이는 입양이 어려워져 출산 사실 자체가 알려지길 원하지 않는 미혼모의 경우 입양 절차를 밟을 수가 없어 아이를 유기하는 경우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베이비 박스를 거쳐간 아이들의 사연을 보면 단순히 미혼모라는 낙인이 두려워 아이를 유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이들 중에는 다운증후군, 언청이로 알려진 구순구개열 등 선천성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60여명 중에 17명 정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선천적 장애가 발견되었다. 구순구개열의 경우 수술을 하면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술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아이를 맡긴다는 엄마,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아이의 아빠와 시가로부터 버림받고, 엄마는 실신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아이를 키울 수 없어 맡긴다는 친정엄마의 편지들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인 그들의 삶, 그들의 이야기는 베이비 박스에 다 담기지 못했다. 담배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어른 옷 혹은 두꺼운 수건에 쌓여 있는 아기를 통해 엄마가 혹은 아빠가 이 아이를 만나고 이별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지를 짐작할 뿐이다.
아직 엄마 뱃속에 있던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아이에게 두 시간 간격으로 40ml의 우유를 주어야 하고, 가끔 막 울 때에는 안아주면 된다는 엄마의 혹은 아빠의 편지는 그들에게 허락된 돌봄의 최대치가 정지된 순간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하다.
사실 베이비 박스에 ‘유기’된 아이들은 한 개인 엄마 아빠가 버린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돌봄 시스템, 재생산 시스템의 취약함에 의해 버려진 것이다. 정상가족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게다가 신체적 장애, 가난이 더해지면 순교자의 마인드가 아니고서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실제 현재 주사랑공동체에서 함께 거주하고 있는 아이들 중의 상당수 역시 다른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돌봄 공백을 한 종교 공동체의 헌신으로 메우고 있는 셈이다. 베이비박스는 그간 개별 가족에 일임하였던 돌봄 시스템의 붕괴를 종교공동체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어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주목할 만 한 것은 2009년 12월에 베이비 박스가 처음 생기고, 2010년도에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기는 4명이었다. 그러나 2011년도에 들어서는 26명, 2012년도에 들어서는 29명으로 급증한다. 이 수치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경우만을 볼 때이며, 한 신문보도에 따르면 2012년에 80여명으로 집계되기도 한다. 2011년에 들어서는 낙태에 대한 법적 감시가 심해져 여성들이 출산조절의 마지막 방법으로 택했던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수술비용이 200만원을 넘어가고, 그마저도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워져 ‘원정낙태’ 얘기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볼 때 베이비 박스에 ‘유기’된 아기들은 출산조절 실패의 증거이다.
나폴레옹의 베이비 박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여성에게 출산조절의 기회라도 생긴 것이 20세기에 들어선 일이라면, 속수무책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의학이 발달하지 않아 영아사망률도 높았겠지만, 사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에 버려졌다. 베이비 박스는 오래된 고안물이다.
17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세례를 받은 모든 아이들의 22퍼센트는 버림받은 아이들이었고, 루오타(routa)라는 이름의 회전통이 주요 고아원 시설에 설치되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에 있는 모든 고아원에 이탈리아의 루오타와 비슷한 장치인 투르(tour)를 설치하라는 포고령을 내렸고, 이 후 이 장치는 “나폴레옹의 회전반(Napolenonic wheel)”으로 불렸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이러한 아기보관소가 이탈리아 전역에 1,200개 정도가 있었으나, 1875년경에 철수되었다. 통제를 벗어나버렸기 때문이다. 당대 어머니들이 육아의 바이블로까지 삼았다는 『에밀』의 저자인 루소, 그 역시 다섯 명의 아이들을 모두 고아원으로 보냈고, 그 아이들과는 영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기독교 시대에는 최소 3세기에 걸쳐 로마에 살면서 하나 이상의 아이를 길렀던 여성들의 거의 대다수가 최소 한 명 이상의 아기를 버렸다. 태어난 아이들의 20~40퍼센트가 유기되었으며, 로마인들이 절름발이 거지에게 적선했다면 그것은 ‘누구나 자기 아이의 구걸을 거절할지 몰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성규범을 보면 매음굴에 가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데, 그 이유가 놀랍게도 자신도 모르는 새 근친상간을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버려진 많은 아이들이 노예나 매춘부로 팔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작금의 베이비 박스 이야기가 불러일으키는 즉자적인 감정의 동요를 조금 식히고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한다. 영아 유기(및 영아 살해)를 초역사적인 패륜 혹은 도덕적 타락의 결과로 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의 재생산 권리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재생산권을 허(許)하라
베이비 박스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출산조절의 어려움, 돌봄 공백이 정상적인 가족 밖에서 어떤 식으로 먼저 폭탄처럼 터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근본적인 재생산 시스템의 작동 오류를 바로잡지 않은 채 베이비 박스를 늘린다면 17세기 이탈리아처럼 19세기 프랑스처럼 애초 선의의 뜻으로 시작한 일이 왜곡되어 결국에는 통제 불가능한 시설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피임, 낙태, 임신, 출산 등을 둘러싼 모성(maternity)은 페미니즘 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사회적 위기 담론이 여성의 자궁을 논란의 무대에 올려왔다. 그러나 여성의 자궁은 인큐베이터처럼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한 여성의 몸, 한 여성의 삶, 인생의 일부분이다. 게다가 출산 후 초기 양육은 사회적 돌봄 공백의 한 가운데에 여성과 아이를 한데 묶어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이름으로 던져 놓은 것이 아닌가. 출산조절의 어려움과 돌봄 공백으로 나타나는 재생산 시스템의 허점이 계급적 공고함, 정상가족이라는 (사회적·제도적) 테두리 속에서는 위장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나. 10대 미혼모이건, 장애아를 출산한 엄마이건, 유부남의 아이를 낳은 엄마이건, 그 여성들에게 재생산권을 보장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정녀 마리아가 아닌 다음에야 그들의 파트너였던 남성들에게도 재생산권을 물어야한다.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은 “개인의 혼인상태, 연령, 계급 등과 상관없이 성관계, 피임, 임신, 출산, 임신 종결을 비롯한 재생산활동에 대한 자유권적 권리이자 출산 이후 건전한 양육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책임까지를 포괄하는 사회권적 권리”이다. 성적 관계에 있는 어떤 파트너도 임신과 상관없는 성관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발전한 21세기 개명한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피임의 실패를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책임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낙태’는 생리,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사건들로 이루어진 여성의 생애주기 곡선에서 어떤 한 순간을 미분한 것이다. 비록 작은 한 점이지만, 그 점은 그 여성의 삶 전후, 전체적인 생애와 연결되어 있는 사건인 것이다. 베이비 박스를 통해 구조한 생명과 여성이 낙태를 통해 구조한 생명은 다르지 않다.
정상적 가족 테두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 활동에 대해서 시혜적인 방식으로 지원하는 지금의 저출산 정책이 아니라 그것은 그들이 당연히 향유하고, 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피임, 임신, 낙태, 출산 등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주요한 재생산 활동은 여성의 황홀한 성관계, 존중받는 성관계와 멀지 않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특성인 바로 이 통합성을 온전히 수용함으로써, 현재 한국사회 재생산 시스템의 작동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낳으세요, 정 안되면 베이비 박스가 있잖아요’ 이건 아니다.
* 주사랑공동체의 베이비 박스 이야기는 책과 카페의 글을 참고하였다. 이종락, 『고마워, 내게 와줘서: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아이들과 베이비박스 이야기』(좋은씨앗, 2012). 카페, <주사랑 공동체의 집, 자원봉사> (http://cafe.daum.net/giveoutlove). 재생산권에 대해서는 양현아의 논문, “낙태에 관한 다초점 정책의 요청 : 생명권 대(對) 자기결정권의 대립을 넘어”(한국여성학, 2010), 양현아 편, 『낙태죄에서 재생산권으로』(사람생각, 2005), 엄혜진, “재생산권의 가부장적 의미구성”(서울대여성학, 2008) 등을 참고하였다. 베이비 박스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 사회생물학자인 새라 블래퍼 허디의 책, 『어머니의 탄생: 모성, 여성, 그리고 가족의 기원과 진화』(사이언스 북스, 2010[1999])을 참고하였다. 랑구르원숭이의 영아 살해를 연구한 허디는 이 책에서 영아 살해는 개체들이 번식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개체들의 적응적 행동임을 밝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영아 유기 역시 부모가 자식에 대한 투자를 종료한다는 점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영아 살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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