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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유기 급증이 입양특례법 때문? 사실 아니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13-03-06 /
Hit. 2786
아동 유기 급증이 입양특례법 때문? 사실 아니다
[해외 입양인, 말 걸기] <34> 무엇이 아동 유기인가
기사입력 2013-03-06 오후 4:14:48
지난해 8월 시행에 들어간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동 유기가 늘어났다는 생각은 이제는 거의 교정 불가능한 국민의 상식처럼 되고 말았다. 이를 주도한 건 <국민일보>의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버립니다 기획보도였다. 이 보도는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다른 매체들로 전파됐고, 급기야 입양특례법 재개정안 발의로 이어졌다. 또 한국기자협회는 이 기획보도를 한 세 기자에게 지난 5일 이달의 기자상을 수여했다.
한국기자협회가 한국의 언론 지평을 종·횡단하는 권위와 지혜를 지닌 기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분들의 보도와 한국기자협회의 이분들에 대한 명예 인증을 문제 삼는 일은 매우 초라하고,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기를 버리는 일이 입양특례법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이 보도는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 보도로 인해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국회의 발의안을 끌어낸 일은 과연 민중의 등불 노릇을 해낸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몇 가지 이유를 먼저 제시하고 대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 증가 원인? 사실이 아니다
경찰청의 자료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에 문의해서 얻은 자료에 의하면(이 자료는 2013년 2월 25일자 <주간동아> 보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입양특례법 시행 이전에 이미 아동 유기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팩트(fact)다. 아래 도표를 보시라.
자료를 보면, 실질적으로 아동 유기가 거의 두 배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면서다. 입양특례법이 시행에 들어간 2012년에는 전년도보다 유기 아동의 숫자가 완만하게 증가했을 뿐이다. 2012년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시행에 들어갔으니,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위의 표가 보여주다시피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입양특례법의 개정이 아동 유기의 대대적인 증가를 가져왔다는 보도는 사실상 오보다. 오보에 이달의 기자상을 준 일은 한국기자협회가 전문성과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킨 듯해 보인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보도의 근거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이다. 위의 표에서 보면 베이비박스의 아동 유기가 2010년에 4명, 2011년에 37명, 2012년에 79명으로 증가했다. 입양특례법의 개정으로 아동 유기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는 바로 이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의 숫자에만 배타적으로 근거를 둔 보도였다.
실제로 2011년에서 2012년에 이르는 동안 전국적인 차원에서 아동 유기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입양특례법 시행 후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아동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유기 아동의 수가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유기 아동 중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숫자가 매우 증가한 것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전국 유기 아동의 블랙홀이 된 셈이다. 재작년에 전국 유기 아동의 29.1퍼센트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고, 지난해에는 절반이 넘는 56.8퍼센트가 들어왔다.
아동 유기에 대한 보도가 베이비박스의 자료에만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보도는 하나의 증폭된 드라마가 되었고, 사실상 정보를 왜곡해서 가공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국민들에게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결과적으로 입양특례법 재개정안 발의라고 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동 유기의 실상을 왜곡한 오보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왜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는가
그럼에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고이 놓고 떠나는 엄마들이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두고 간다고 메모를 남기는 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니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의 원인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먼저 생각해볼 일은 왜 다른 곳이 아닌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느냐는 점이다.
베이비박스는 2009년 12월 6일에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소재한 한 교회의 목사가 설치했고, 바로 다음날 최초의 보도가 나갔다. 이듬해 초, 보건복지부가 베이비박스의 불법성에 대해서 경고하며 폐쇄를 요구했고 이를 설치한 목사는 반발했다. 이 일로 인해 베이비박스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급격하게 증가해서,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신문과 방송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2010년 겨울 무렵 이 베이비박스에 대한 연민과 선의를 가진 연예인들이 나서서 후원의 밤을 열자 온 나라의 언론 매체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급기야 해외 언론들까지 나서서 베이비박스를 개설한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베이비박스가 사회적 선행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점점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가 2012년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시행되자 입양시설로 갔다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베이비박스로 발길을 돌리는 엄마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거듭해서 나갔다. 이렇게 베이비박스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곳이 되었다.
이 결과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들은 아이를 자신이 키우는 것보다는 베이비박스로 데리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식이 형성되었을 테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임신·출산 미혼모들이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더 안전하고 따뜻한 유기에 대한 의식이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아동 유기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아동 유기에 내몰린 여성을 따뜻하게 돌보아 아동 유기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대신,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동 유기를 마치 가능한 일인 것처럼 하는 메시지가 나가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추정컨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의 숫자는 올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오보에 가까운 언론 보도가 거듭된다면, 종국에는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합법적으로 유인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될지도 모른다.
무엇이 아동 유기인가
그러면 이 지점에서 무엇이 아동 유기인가를 생각해보자.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원치 않는 출산을 한 여성이 자기의 삶의 환경 안에서 아기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아기를 자기 생활환경으로부터 떼어놓기로 결심하는 데에서 이 일은 시작된다.
여성은 입양시설로 아기를 데리고 가서 양육을 의뢰했을 것이다. 입양기관은 출생신고를 하고 나서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아기가 입양된 후,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된 아기의 출산사실은 삭탈된다는 정보도 기관이 함께 설명해줬는지는 모를 일이다. 황망한 마음으로 아기를 입양시설로 데리고 간 엄마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베이비박스로 향하고, 거기에 고이 아기를 놓아두고 흔들리는 걸음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좌절을 안고 떠나야 했으리라.
입양시설이든 베이비박스든 엄마가 아기를 떼어놓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하나는 불법이기에 유기라는 이름이 붙고 하나는 합법이기 때문에 양육 의뢰라는 말이 붙을 뿐이다. 엄마가 아이를 떼어놓기로 먼저 마음을 먹은 후에 처음 걸음을 옮긴 곳은 입양시설이고 그다음에 간 곳이 베이비박스이다. 유기는 양육의 선택지를 찾지 못한, 혹은 제공받지 못한 여성의 가슴 속에서 입양시설로 발걸음을 떼어놓기 전에 이미 일어난 일이다. 입양시설로 가서 아이를 놓고 오는 일은 유기가 아니고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오는 일은 유기라는 관점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입양시설로 가면 괜찮고 베이비박스로 가면 아동 유기가 되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인가? 이런 경우 입양은 자명하고 완결적이고 무해한 해결책이고 베이비박스의 아동 유기는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참사인가? 그래서 입양특례법을 개정해서 이 여성들로 하여금 베이비박스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말끔하게 해결되는가?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면 아동 유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아동 유기는 입양특례법을 퇴행적으로 개정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 유기의 원인은 미혼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생사실이 등재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데, 사실은 아동이 입양되고 나면 이 기록은 삭탈된다.
다른 몇 가지 요소, 파양의 경우 친생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산 사실이 재생성된다든지, 아동이 성년이 되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통해서 친생모의 신원에 관한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든지, 의료보험 체계상에 있어서 미혼모 자신의 의료 기록에 아동의 출산과 치료에 관한 기록이 남는다든지 등, 문제의 소지가 되는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입양특례법의 개정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고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을 미세하게 손질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제3의 해법에 대한 숙고 없이 24세 이하 청소년 미혼모의 경우 입양 의뢰된 아동을 기아로 간주하고 입양기관의 장이 일가 창립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 아동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자는 것인데, 이는 엄연히 진실의 왜곡이자 불법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지난 60년을 살아왔고, 그래서 16만여 명에 이르는 해외입양인의 97%가 친가족을 찾을 길이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국내 입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금까지 7만6000여 명의 아동이 국내 입양되었는데, 이 경우에도 98%의 아동들이 입양가족의 친생자로 등록이 되어 친부모에 관한 기록을 국가의 공부에서 찾아낼 길이 전혀 없다. 출생의 진실성을 국가의 공부가 담보해주지 못하는 나라라는 점에 대한 아픔이나, 이런 관행은 인권 후진국의 행태일 뿐이라는 성찰은 눈을 비비고도 찾을 길이 없다. 비록 입양자녀가 편견에 시달리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주기 위한 선의에서 입양부모가 그렇게 했다는 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출생의 진실성을 국가의 공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 없이 막무가내로, 잘 개정된 법을 전면적으로 퇴행시키겠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길에 버려지는 한 생명의 아동이라도 결단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충정이라고 하더라도 사안의 해결을 바라보는 사려가 결핍된 제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
무엇보다도 입양이 보편적 아동 양육 방식도 아니고, 완결적이고 무해한 해결책도 아니다. 입양은 아동에게는 원초적 상처를 남기고 엄마에게는 사회적 죽음을 남기는 불완전하고 불가피한 특수한 아동 양육 방식일 뿐이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해답이 입양시설은 아니다. 이 베이비박스의 논란에 대한 성찰이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모색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한국이 1984년 가입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의하면 가입국의 경내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은 임신, 출산, 수유 기간 동안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입양시설이 답이 아니다. 입양시설은 어마와 아이에 대한 분리 대응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친엄마의 품에서 자랄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엄마에게는 자기 아이를 키울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기회의 제공이 있으면 선택이 가능하다. 기회를 제공받았음에도 입양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여성들의 선택권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자는 것이 양육을 폭력적으로 강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책임을 제대로 묻자
아이의 아버지는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철없는 청소년이나 무책임한 미혼부들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기혼 남성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혼외자식들의 출산 사실을 등재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으로 보나 아이의 권리로 보나 당연한 것이다. 누가 이 땅의 소위 혼인 내의 자식들에게는 친생부와 친생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될 권리를 부여하고 혼외자식들에게는 친생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될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아동에게는 가혹하고 엄연한 차별이다. 왜 우리 사회는 혼외자식의 출산에 대한 모든 짐을 여성에게만 지우는가. 왜 그들만 홀로 편견과 모멸 가운데서 살도록 하는가. 그것은 사실상 여성에게만 지워온 사회적 처벌의 한 형태가 아닌가. 왜 여성과 아동만 처벌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청소년 미혼부들에게 계획 없이 함부로 성관계를 맺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출산사실이 등재된다는 사실과 일생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남성 권력에 대한 통제 없이 모든 짐을 가련한 미혼 여성과 아이에게만 걸머지게 하는 사회는 불의한 사회이다.
이렇게 혼외자식을 낳은 성인 남성이든 청소년 미혼부이든, 성년 미혼부이든 이들에게 자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상에 출산 사실을 명기하도록 하고, 국가가 아동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도입해서라도 이 남성들이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책임을 걸머지게 하면, 두 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는 무분별한 임신과 원치 않는 출산과 원치 않는 출산의 결과로 유기되는 아동의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혼모가 양육비를 지원받게 되면, 역시 아동 양육의 선택지가 생겨서 아동 유기가 줄어들 것이다.
아동 유기의 문제를 마치 입양특례법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일을 통해서, 그래서 그 아이들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입양기관의 원장이 창설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암암리에 도움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이 가련한 엄마들도 아니고 또 미혼모의 흔들리는 손길 아래에서 베이비박스에 고이 놓이고 있는 아기들도 아니다. 아이를 낳은 자기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양육 책임을 걸머지지 않는 남성들이다.
또 하나의 대안은 아마도 청소년들이 양육 계획 없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이다. 이 성교육은 생물학적 성교육을 넘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 책임에 대한 교육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고, 방법상으로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고려해서 쉽고 흥미롭고 또 명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콘텐츠의 개발과 스마트폰을 통한 광범위한 유포망의 사용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초점을 청소년 미혼부에게 책임과 경고성 메시지가 담기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책임 있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책임 있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동 유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다. 따라서 이런 방향을 간과한 채 입양특례법 개정만이 해답이라고 여기는 것은 급한 마음이 담겨 있긴 해도, 후유증이 오래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난 60년 해외입양을 펼쳐온 선배들이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를 넘겨준 것처럼, 우리가 오늘 걸머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또다시 미래 세대에게 숙제로 남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이 아닌 지식도 국민의 마음에 새겨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관념이 된다. 오보는 이미 관념을 만들었고, 관념은 세상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보에 기초한 관념이 아동 유기와 입양에 관한 우리 사회의 해법의 깃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 선의를 지닌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필자는 자베르 경감이라는 냉혈한의 이름을 얻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자베르의 세상에 구원은 없다)
한국기자협회가 한국의 언론 지평을 종·횡단하는 권위와 지혜를 지닌 기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분들의 보도와 한국기자협회의 이분들에 대한 명예 인증을 문제 삼는 일은 매우 초라하고, 바위에 계란치기처럼 버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기를 버리는 일이 입양특례법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이 보도는 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일까? 이 보도로 인해 입양특례법 재개정을 위한 국회의 발의안을 끌어낸 일은 과연 민중의 등불 노릇을 해낸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몇 가지 이유를 먼저 제시하고 대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 증가 원인? 사실이 아니다
경찰청의 자료와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주사랑공동체에 문의해서 얻은 자료에 의하면(이 자료는 2013년 2월 25일자 <주간동아> 보도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입양특례법 시행 이전에 이미 아동 유기가 급격하게 증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팩트(fact)다. 아래 도표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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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현 목사 제공 |
자료를 보면, 실질적으로 아동 유기가 거의 두 배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2010년에서 2011년으로 넘어가면서다. 입양특례법이 시행에 들어간 2012년에는 전년도보다 유기 아동의 숫자가 완만하게 증가했을 뿐이다. 2012년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시행에 들어갔으니,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는 주장은 위의 표가 보여주다시피 사실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입양특례법의 개정이 아동 유기의 대대적인 증가를 가져왔다는 보도는 사실상 오보다. 오보에 이달의 기자상을 준 일은 한국기자협회가 전문성과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킨 듯해 보인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보도의 근거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이다. 위의 표에서 보면 베이비박스의 아동 유기가 2010년에 4명, 2011년에 37명, 2012년에 79명으로 증가했다. 입양특례법의 개정으로 아동 유기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는 바로 이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의 숫자에만 배타적으로 근거를 둔 보도였다.
실제로 2011년에서 2012년에 이르는 동안 전국적인 차원에서 아동 유기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지난해 입양특례법 시행 후 베이비박스에 유기하는 아동의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유기 아동의 수가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유기 아동 중 베이비박스에 들어오는 숫자가 매우 증가한 것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전국 유기 아동의 블랙홀이 된 셈이다. 재작년에 전국 유기 아동의 29.1퍼센트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왔고, 지난해에는 절반이 넘는 56.8퍼센트가 들어왔다.
아동 유기에 대한 보도가 베이비박스의 자료에만 근거한 것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보도는 하나의 증폭된 드라마가 되었고, 사실상 정보를 왜곡해서 가공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국민들에게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결과적으로 입양특례법 재개정안 발의라고 하는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동 유기의 실상을 왜곡한 오보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왜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는가
그럼에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고이 놓고 떠나는 엄마들이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기를 두고 간다고 메모를 남기는 일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니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의 원인인 것은 사실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먼저 생각해볼 일은 왜 다른 곳이 아닌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느냐는 점이다.
베이비박스는 2009년 12월 6일에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에 소재한 한 교회의 목사가 설치했고, 바로 다음날 최초의 보도가 나갔다. 이듬해 초, 보건복지부가 베이비박스의 불법성에 대해서 경고하며 폐쇄를 요구했고 이를 설치한 목사는 반발했다. 이 일로 인해 베이비박스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급격하게 증가해서,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은 신문과 방송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2010년 겨울 무렵 이 베이비박스에 대한 연민과 선의를 가진 연예인들이 나서서 후원의 밤을 열자 온 나라의 언론 매체가 앞다투어 이를 보도했다. 급기야 해외 언론들까지 나서서 베이비박스를 개설한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기에 이르렀다. 베이비박스가 사회적 선행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점점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다가 2012년 8월 5일 입양특례법이 시행되자 입양시설로 갔다가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두려운 나머지 베이비박스로 발길을 돌리는 엄마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거듭해서 나갔다. 이렇게 베이비박스는 전국적인 인지도를 지닌 곳이 되었다.
이 결과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한 여성들은 아이를 자신이 키우는 것보다는 베이비박스로 데리고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의식이 형성되었을 테다. 같은 처지에 있는 임신·출산 미혼모들이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더 안전하고 따뜻한 유기에 대한 의식이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아동 유기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아동 유기에 내몰린 여성을 따뜻하게 돌보아 아동 유기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대신,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동 유기를 마치 가능한 일인 것처럼 하는 메시지가 나가는 사회가 되고 만 것이다. 추정컨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의 숫자는 올해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오보에 가까운 언론 보도가 거듭된다면, 종국에는 베이비박스는 아동 유기를 합법적으로 유인하는 시스템으로 정착될지도 모른다.
무엇이 아동 유기인가
그러면 이 지점에서 무엇이 아동 유기인가를 생각해보자. 계획되지 않은 임신과 원치 않는 출산을 한 여성이 자기의 삶의 환경 안에서 아기를 양육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아기를 자기 생활환경으로부터 떼어놓기로 결심하는 데에서 이 일은 시작된다.
여성은 입양시설로 아기를 데리고 가서 양육을 의뢰했을 것이다. 입양기관은 출생신고를 하고 나서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아기가 입양된 후, 엄마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된 아기의 출산사실은 삭탈된다는 정보도 기관이 함께 설명해줬는지는 모를 일이다. 황망한 마음으로 아기를 입양시설로 데리고 간 엄마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 베이비박스로 향하고, 거기에 고이 아기를 놓아두고 흔들리는 걸음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좌절을 안고 떠나야 했으리라.
입양시설이든 베이비박스든 엄마가 아기를 떼어놓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하나는 불법이기에 유기라는 이름이 붙고 하나는 합법이기 때문에 양육 의뢰라는 말이 붙을 뿐이다. 엄마가 아이를 떼어놓기로 먼저 마음을 먹은 후에 처음 걸음을 옮긴 곳은 입양시설이고 그다음에 간 곳이 베이비박스이다. 유기는 양육의 선택지를 찾지 못한, 혹은 제공받지 못한 여성의 가슴 속에서 입양시설로 발걸음을 떼어놓기 전에 이미 일어난 일이다. 입양시설로 가서 아이를 놓고 오는 일은 유기가 아니고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오는 일은 유기라는 관점은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입양시설로 가면 괜찮고 베이비박스로 가면 아동 유기가 되는 것이 정말 맞는 일인가? 이런 경우 입양은 자명하고 완결적이고 무해한 해결책이고 베이비박스의 아동 유기는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참사인가? 그래서 입양특례법을 개정해서 이 여성들로 하여금 베이비박스로 발길을 돌리는 일이 없도록 하면 모든 문제가 일거에 말끔하게 해결되는가?
입양특례법을 개정하면 아동 유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아동 유기는 입양특례법을 퇴행적으로 개정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동 유기의 원인은 미혼모가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생사실이 등재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인데, 사실은 아동이 입양되고 나면 이 기록은 삭탈된다.
다른 몇 가지 요소, 파양의 경우 친생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동의 출산 사실이 재생성된다든지, 아동이 성년이 되어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를 통해서 친생모의 신원에 관한 기록을 들여다볼 수 있다든지, 의료보험 체계상에 있어서 미혼모 자신의 의료 기록에 아동의 출산과 치료에 관한 기록이 남는다든지 등, 문제의 소지가 되는 것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입양특례법의 개정을 통해서 해결할 일이 아니고 가족관계등록 등에 관한 법을 미세하게 손질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런 제3의 해법에 대한 숙고 없이 24세 이하 청소년 미혼모의 경우 입양 의뢰된 아동을 기아로 간주하고 입양기관의 장이 일가 창립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 아동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자는 것인데, 이는 엄연히 진실의 왜곡이자 불법이다. 바로 그렇게 우리는 지난 60년을 살아왔고, 그래서 16만여 명에 이르는 해외입양인의 97%가 친가족을 찾을 길이 없는 사회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국내 입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의하면 지금까지 7만6000여 명의 아동이 국내 입양되었는데, 이 경우에도 98%의 아동들이 입양가족의 친생자로 등록이 되어 친부모에 관한 기록을 국가의 공부에서 찾아낼 길이 전혀 없다. 출생의 진실성을 국가의 공부가 담보해주지 못하는 나라라는 점에 대한 아픔이나, 이런 관행은 인권 후진국의 행태일 뿐이라는 성찰은 눈을 비비고도 찾을 길이 없다. 비록 입양자녀가 편견에 시달리거나 정체성의 혼란을 막아주기 위한 선의에서 입양부모가 그렇게 했다는 점을 백번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 인간의 출생의 진실성을 국가의 공부가 보장해주지 못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성찰 없이 막무가내로, 잘 개정된 법을 전면적으로 퇴행시키겠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길에 버려지는 한 생명의 아동이라도 결단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충정이라고 하더라도 사안의 해결을 바라보는 사려가 결핍된 제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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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습니다.) ⓒ연합뉴스 |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자
무엇보다도 입양이 보편적 아동 양육 방식도 아니고, 완결적이고 무해한 해결책도 아니다. 입양은 아동에게는 원초적 상처를 남기고 엄마에게는 사회적 죽음을 남기는 불완전하고 불가피한 특수한 아동 양육 방식일 뿐이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해답이 입양시설은 아니다. 이 베이비박스의 논란에 대한 성찰이 엄마와 아기를 함께 보듬는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모색의 기회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한국이 1984년 가입한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의하면 가입국의 경내에 살고 있는 모든 여성은 임신, 출산, 수유 기간 동안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입양시설이 답이 아니다. 입양시설은 어마와 아이에 대한 분리 대응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는 친엄마의 품에서 자랄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엄마에게는 자기 아이를 키울 기회가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기회의 제공이 있으면 선택이 가능하다. 기회를 제공받았음에도 입양을 보내기로 결심하는 여성들의 선택권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하자는 것이 양육을 폭력적으로 강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의 책임을 제대로 묻자
아이의 아버지는 통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철없는 청소년이나 무책임한 미혼부들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기혼 남성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 혼외자식들의 출산 사실을 등재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으로 보나 아이의 권리로 보나 당연한 것이다. 누가 이 땅의 소위 혼인 내의 자식들에게는 친생부와 친생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될 권리를 부여하고 혼외자식들에게는 친생부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될 권리를 박탈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아동에게는 가혹하고 엄연한 차별이다. 왜 우리 사회는 혼외자식의 출산에 대한 모든 짐을 여성에게만 지우는가. 왜 그들만 홀로 편견과 모멸 가운데서 살도록 하는가. 그것은 사실상 여성에게만 지워온 사회적 처벌의 한 형태가 아닌가. 왜 여성과 아동만 처벌받아야 하는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청소년 미혼부들에게 계획 없이 함부로 성관계를 맺다가 아이를 낳게 되면 자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아이의 출산사실이 등재된다는 사실과 일생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남성 권력에 대한 통제 없이 모든 짐을 가련한 미혼 여성과 아이에게만 걸머지게 하는 사회는 불의한 사회이다.
이렇게 혼외자식을 낳은 성인 남성이든 청소년 미혼부이든, 성년 미혼부이든 이들에게 자신들의 가족관계등록부상에 출산 사실을 명기하도록 하고, 국가가 아동양육비를 대신 지급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도입해서라도 이 남성들이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 책임을 걸머지게 하면, 두 가지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는 무분별한 임신과 원치 않는 출산과 원치 않는 출산의 결과로 유기되는 아동의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혼모가 양육비를 지원받게 되면, 역시 아동 양육의 선택지가 생겨서 아동 유기가 줄어들 것이다.
아동 유기의 문제를 마치 입양특례법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는 일을 통해서, 그래서 그 아이들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입양기관의 원장이 창설하는 일을 통해서 우리가 암암리에 도움을 베풀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이 가련한 엄마들도 아니고 또 미혼모의 흔들리는 손길 아래에서 베이비박스에 고이 놓이고 있는 아기들도 아니다. 아이를 낳은 자기 자신들의 존재를 은폐하고 양육 책임을 걸머지지 않는 남성들이다.
또 하나의 대안은 아마도 청소년들이 양육 계획 없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성교육이다. 이 성교육은 생물학적 성교육을 넘어 임신과 출산 그리고 양육 책임에 대한 교육을 포괄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고, 방법상으로는 청소년들의 문화적 접근성을 고려해서 쉽고 흥미롭고 또 명확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콘텐츠의 개발과 스마트폰을 통한 광범위한 유포망의 사용을 고려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초점을 청소년 미혼부에게 책임과 경고성 메시지가 담기는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책임 있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책임 있는 출산을 할 줄 아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동 유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다. 따라서 이런 방향을 간과한 채 입양특례법 개정만이 해답이라고 여기는 것은 급한 마음이 담겨 있긴 해도, 후유증이 오래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지난 60년 해외입양을 펼쳐온 선배들이 우리에게 무거운 과제를 넘겨준 것처럼, 우리가 오늘 걸머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또다시 미래 세대에게 숙제로 남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이 아닌 지식도 국민의 마음에 새겨지면 되돌리기 어려운 관념이 된다. 오보는 이미 관념을 만들었고, 관념은 세상을 재구성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오보에 기초한 관념이 아동 유기와 입양에 관한 우리 사회의 해법의 깃발을 들고 있다. 그리고 그 깃발 아래 선의를 지닌 많은 사람이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필자는 자베르 경감이라는 냉혈한의 이름을 얻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자베르의 세상에 구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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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스위스 입양인 마크 샴포가 입양과 미혼모라는 주제로 쓴 글입니다. 샴포는 스위스 입양인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에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몇 주 전 한 텔레비전 채널에서 유기된 아기와 유기견의 입양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며 입양특례법을 비판하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 내용대로라면 현행 입양특례법은 미혼모들이 아동 유기를 하는 배경이 된다. 해외 입양인인 필자는 이 프로그램을 보며 묘하고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입양특례법과 미혼모, 입양 등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나 구체적 정보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해당 법을 지지하거나 중립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인터뷰의 대상이 아니었다. 입양특례법을 반대하는 사람만이 인터뷰 대상이었다. 심지어 입양특례법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도 없었다. 언론이 이래도 되는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문제는 이 한 프로그램뿐이 아니다. 최근 언론은 입양특례법이 아동 유기를 부른다는 보도를 반복적으로 하며, 미혼모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다. 미혼모는 아동을 양육하기에 사회적으로 부적합하므로, 미혼모의 아이는 입양을 보내야 한다는 악랄한 선입견이다. 이런 방식으로 입양을 권하는 보도는 하지만 입양 외에 다른 대안은 제시하지 않는다. 예컨대 아이의 아버지가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현행 입양특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의 세부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각종 언론 보도 내용과 달리 입양특례법은 친모가 아기를 포기하게끔 강요하지 않는다. 현행 입양특례법은 아기를 출산한 입양을 동의하기까지 7일간의 숙려기간을 가지도록 한다. 친모가 입양에 동의하기 전에 관련 상담을 받고 자신의 권리 등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울러 입양특례법은 가정법원으로 하여금 입양을 원하는 여성이 아기의 친모임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친모 증명은 한국 법체계에서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한국 민법은 시청에 등록하는 단순 입양이나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는 완전 입양을 할 때, 이미 친모 증명을 의무로 하고 있다. 참고로 오는 7월 1일부터는 단순 입양도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신생아 출생 신고를 면제해줄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단지 미혼모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한국인과 연관된 문제다. 따라서 입양특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실제로는 민법 개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입양특례법을 재개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입양인으로서 필자는 아동 유기의 책임은 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혼모들은 아동을 양육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이들은 미혼모를 사회에서 고립시킴으로써 사실상 처벌을 내린다. 이는 미혼모들로 하여금 아동 유기를 하도록 벼랑 끝으로 밀어낸다. 미혼모는 아동을 양육할 능력이 없다는 생각은 결국 갓 아기를 출산한 미혼모들을 친구나 가족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만든다. 소외된 상황에 부닥치면 누구나 낙담하고 고민하며, 그 결과는 "나는 엄마로서 진짜 자격이 없나"라는 자기 의심으로 이어진다. 희망이 없는 엄마는 아동을 유기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아동이 유기되면 이런 사회를 만든 모든 사람들이 버려진 아이를 함께 책임지는 것이 된다. 물론 전 사회가 그 사회에 속한 아기들을 공동 양육한다는 것은 좋은 개념이다. 하지만 아동을 엄마와 이별시켜서는 안 된다. 아동과 친모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함께 살 때 가장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 유기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미혼모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그것이 책임감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미혼부가 미혼모와 아동을 위해 더욱 책임감 있게 양육 의무를 질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마크 샴포 marc.korea@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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