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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왜냐면] 베이비박스, 금지 아닌 소멸이 답이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19-11-06   /   Hit. 3255

2019년 11월 5일 한겨레 기사입니다 


정현주 ㅣ 중고등대안학교 ‘불이학교’ 강사


지난달 4일 발표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한국 정부에 대한 견해 속에 ‘베이비 박스 금지’가 포함돼 있었다. 이런 견해의 근거는 ‘베이비 박스가 아동 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는 ‘베이비 박스는 유기되는 아동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한시적인 시설’이라고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엔의 견해는 한국 내 현실에 대한 충분한 고려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 베이비 박스는 ‘아동이 유기되는 사회 현실’의 결과물이지, ‘아동 유기’의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금지하는 것으로 아동 유기를 막을 수 없다. 미혼모 신변 보호와 한부모 가정 지원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면 베이비 박스는 자연히 사라진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영아 살해와 유기 사건은 한국 미혼모의 현실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1월5일 울산에서 17살 여고생이 자택 화장실에서 남자 아기를 낳은 뒤 흉기로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 6월10일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서 37살의 산모가 아기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지난해 유기 아동은 연간 320명이고, 2019년 현재 1만명 넘는 아동이 보육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베이비 박스’ 금지보다 영아 살해나 아동 유기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2010년 주사랑공동체의 이종락 목사는 서울 난곡동 주사랑교회에 ‘베이비 박스’를 설치했다. 와상장애였던 첫째 아들을 돌보던 이 목사는 주변의 부탁으로 부모가 포기한 장애 아동들을 함께 돌보게 됐다. ‘장애아를 돌봐주는 교회’라는 소문이 났고, 교회 앞에 장애 아기를 데려다 놓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러던 중 2007년 새벽 3시께 잠결에 한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교회 앞에 나와 보라는 내용이었다. 이 목사는 고양이 발자국이 찍힌 생선상자 속에서 다운증후군의 미숙아를 안아 올렸는데, 아기의 몸은 선뜩했다. 장시간 밖에 있어 저체온증이 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유기되는 아기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고민했고, 2009년 체코의 ‘베이비 박스’에 대한 외신 보도를 보고 직접 ‘베이비 박스’를 고안했다. ‘베이비 박스’는 건물 내부와 외부에 양쪽으로 문이 달린 형태이고, 밖에서 문을 열면 벨소리가 나서 10초 안에 아기를 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가 영아 살해와 아동 유기를 막고자 한다면, ‘베이비 박스’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이번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최종견해 속에 포함된 ‘보편적 출생등록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아이를 분만한 병원에서 출생 사실을 지방자치단체에 알리는 ‘출생통보법’을 시행하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은 산모는 병원 이용을 꺼려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살해되고 유기되는 아동들이 병원에서 출산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목사 역시 ‘베이비 박스’가 필요 없는 사회를 원한다. 박스가 설치된 첫해인 2010년부터 3년간은 한해 30명 안팎으로 들어오던 아기들이 2013년부터 한달에 30명 가까이 들어와 9배로 늘었다. 미혼모들이 남긴 쪽지에서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미혼모가 출생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보고, 이 목사는 그 이유가 당시에 개정된 ‘입양특례법’ 때문이라 생각했다. 이 법을 보완하기 위해 ‘비밀출산법’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익명으로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산모가 양육을 포기하면 바로 지자체가 개입할 수 있는’ 이 법은 ‘베이비 박스’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다.

베이비 박스는 인위적으로 금지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소멸돼야 한다. 2014년 이곳에 아기를 데려다 놓았던 미혼모는 구덩이를 파고 낳자마자 아기를 파묻으려 하다가 탯줄을 단 채로 흙 묻은 아기를 데리고 왔다. 베이비 박스는 아동 유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원문 :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73599

출처 : 한겨레 (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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