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법, 이상한 법...좋은 법은 어디로?
‘입양특례법’의 어두운 그림자
“저는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인입니다”
고3인 A양은 어느 날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낙태도 생각했지만 아기를 차마 지울 수가 없어 몰래 낳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될까 두려웠던 A양은 그길로 가출을 해 미혼모 보호센터로 들어갔다. 어렵사리 아기를 낳았지만 키울 여건이 되지 않고 사회적인 시선이 두려워 입양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아기를 입양 보내려면 자신의 호적에 먼저 등록해야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고민 끝에 A양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왔다. 자신의 아이를 ‘버렸다’는 죄책감에 눈물을 흘렸지만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입양특례법
지난해 8월부터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입양특례법 때문에 버려지는 영아가 급증하고 있어 재개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서울 관악구의 한 교회 앞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이가 최근 3년 사이 184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주사랑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아기는 2010년 4명, 2011년 37명, 2012년 79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올해도 4월까지 벌써 64명의 영아가 주사랑교회에 들어왔다. 이렇게 버려지는 영아가 급증하는 배경에는 개정 입양특례법때문이라는 것이 교회 측 설명이다. 대체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어떤 내용이기에 버려지는 영아들이 많아졌을까?
개정 입양특례법은 출산 후 입양 시 친부모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 출생신고를 하도록 하고 청소년의 경우 부모의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했다. 입양절차가 완료되면 별도로 친양자 입양관계증명서가 생성돼 모자기록이 남지 않지만 입양이 안될시 호적에 계속 친자로 남게 된다.
사실 입양특례법은 성장 입양인들의 뿌리 찾기와 아동 인권보호의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개정 전에도 입양아동에 대한 출생신고가 필요했지만 공적기관의 개입 없이 입양부모의 친자녀인 것처럼 허위 출생신고로 입양이 이뤄졌으며 지원금을 타기 위한 수단 등으로 입양제도가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해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개정된 것이다.
또한 개정법은 친부모가 아이를 입양보내기 전 1주일간 입양숙려기간을 갖도록 했다.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입양대신 양육을 선택하라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말뿐인 취지일 뿐, 출생신고에 따른 기록이 남을 것을 걱정한 미혼모나 1주일간의 숙려기간동안 아이를 둘 곳 없는 미혼모들이 아기를 버리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법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반증이다.
미혼모와 아동 인권은 어디에도 없었다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발생한 문제는 단순히 태아 유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을 통해 아기를 사고파는 불법입양이 성행하고 있으며 불법낙태, 출산 후 살인 등의 비윤리적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한연희 회장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우선순위는 유기된 영아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며 "출산한 부모의 입양 전 출생신고제는 출생등록제가 되도록 해 가족관계 등록을 희망하지 않는 부모가 신분노출을 꺼려 영아 유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양육의사가 있어도 입양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가 있고 성인미혼모와 별도로 청소년 미혼모 보호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혼모 보호시설 애란원 한상순 원장은 "입양특례법의 근본목적에는 동의하고 법원허가제도 아동의 일생으로 볼 때 결국 합당한 조치라고 생각하지만 미혼모 보호장치 등은 활발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며 "장애나 사망, 파양 등의 경우 미혼모 호적에 남지 않는 보호장치를 추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강은숙 대한사회복지회 전남지부장은 "가족관계등록부에 해야 하는 출생신고를 기피해 아동보육시설에서 18개월까지 자라거나 유기돼 생명까지 잃게 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미혼모라는 주홍글씨를 서류에 쐐기 박아 아이를 버려야만 하는 죄인이 되는 미혼모의 상처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입양의 절차도 문제가 많다. 법원에서 사건번호로 입양을 다루고 있으며 모든 서류를 정부에서 다 받아 법원에서 허가받게 돼 있어 많은 서류가 필요하다. 또 사람마다 심사기준이 천차만별이라 서류도 다르게 제출해야하는 등 복잡한 절차 때문에 입양이 원만하게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법원허가제와 관련해 강은숙 전남지부장은 "법원허가제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법원에서 하는 심리적 부담이 있으므로 국내 입양방법을 개선해 중앙당국, 공적기관 등에서 입양승인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호소했다.
정상천 대한사회복지회 회장은 "불법입양이 급증하다기 보다는 양부모들의 입양시스템이 어렵고 제약이 많으니 입양이 줄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관계등록부의 등재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입양아의 입양증명서에는 친모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입양인과 미혼모의 권익옹호를 위한 시민단체인 뿌리의 집 김도현 목사는 "베이비박스의 경우 불법이긴 하지만 아동은 구원하는 반면 아이를 버린 엄마의 절망과 아픈 삶에 대해서는 보호하지 못한다"며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입양특례법을 개정하고 완화해야 된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는데 우리 사회가 이제 어머니도 아동도 함께 우리 사회의 안전망으로 엮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생명살리기운동 베이비박스

관악구 주사랑교회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는 어떤 사연을 가진 아기들이 들어올까? 대부분 이곳에 버려지는 아기는 미성년 미혼모와 성인 미혼모, 이혼한 가정의 아기, 그리고 한국으로 온 해외 이주 노동자들의 아기가 들어온다고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제주도에서부터 이곳까지와 살려달라며 맡긴 아기도 있으며, 갓 태어나 탯줄이 채 잘리지 않은 아기 등등 그 사연도 다양하다. 이곳에 들어온 아기의 엄마들은 편지를 통해 “전 인간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죄인입니다” 라며 자책했다.
그동안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영아는 입양기관을 거쳐 국내 가정으로 입양돼 왔다. 그러나 지난해 입양특례법이 개정되면서 절차가 복잡해진 이유로 2012년 8월 이후 버려진 영아들은 모두 보육원에 맡겨졌다.
주사랑교회 정영란 전도사는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미혼모다. 그들은 편지에 입양특례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버리고 간다. 어떻게든 입양해 달라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베이비박스는 불법이다. 이를 두고 부정적인 시선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 전도사는 "생명살리기 운동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명예 때문에 운영 하냐는 시선들이 있다. 그렇지만 이곳은 정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라며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기관에서는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구청에서 담당해야하는 직원이 1명뿐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털어놨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기가 아플 경우, 구청직원이 함께 병원에 동행해야 한다. 때문에 1명뿐인 구청직원이 모든 업무를 맡아 처리하기엔 역부족이며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구청에서도 베이비박스를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정 전도사는 "구청직원의 심정도 이해가 된다. 얼마나 힘들겠느냐"라며 "그러니 정부에서 지원은 못해줘도 담당 직원이라도 더 보충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오는 아기들이 급증하면서 구청과 주사랑교회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관할 지자체인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는 "법적인 근거가 없는 시설이기 때문에 베이비박스는 없어져야 한다"라며 "이 시설이 불법유기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에 철거하도록 권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를 처음 고안해낸 주사랑교회 이종락 목사는 이와 같은 갈등과 시선에 대해 "사람 목숨으로 장난치면 안된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2007년 어느 겨울, 교회 앞에 놓인 아기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일을 겪고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체코의 베이비박스를 언론을 통해 본 뒤 현재의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고 한다. "날씨에 영향 받거나 들고양이로 부터 보호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 이모든 것은 하나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서지, 다른 이유는 없다. 미혼모 아기라고 해서 죽어서야 되겠느냐"라고 피력했다.
특히 이 목사는 유기를 조성한다는 의견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고 있다. 진짜 유기를 조성하는 것은 법이지, 베이비박스는 생명이라도 살려보기 위해 미혼모들이 차선책으로 선택할 뿐이라는 것이 이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입양특례법 재정 이후 지하철 화장실이나 음식물 쓰레기통에 아기를 유기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아기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말고 이곳에라도 보내서 살리라는 게 어떻게 유기를 조장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며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유기되는 아기가 없어 베이비박스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길 바라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이어 "해외의 경우 나라에서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포기하는 아이를 나라에서 키우기 위해서다. 소중한 국민하나라도 보호하는 그들의 노력을 배워야한다. 자국민을 사랑하는 나라가 정말 선진국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그동안 베이비박스가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운영되었으니 이제 나라에서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미혼모와 아이를 두 번 죽이는 입양특례법이 재개정되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는 아이를 낳으라고 출산장려는 하면서 미혼모의 아이는 정작 외면하는 것 같다. 누구의 아이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입양 수출국이란 오명을 벗고 국내 입양을 유도하기 위해 개정했다는 입양특례법은 현실과 맞지 않는 법임에 틀림없다. 국회에서도 입양특례법 재개정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 등 11명이 발의한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에 접수되었다.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부모 동의가 있으면 입양숙려기간을 생략할 수 있게 하고 출생신고 의무에 예외를 두자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전문위원 검토를 거쳐 6월 이후 위원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예외를 계속 적용하는 것이 아닌 지금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니 한시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다.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라는 의도처럼 보이는 이 법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악법도 법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살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외사례를 살펴보고 현실에 맞는 법으로 재개정되길 바래본다.
취재 신경진 기자/kjs86@snt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