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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내 아이의 친생모가 남긴 편지… 그냥 둘 수 없었다

Writer. 주사랑공동체   /   Data. 2026-07-17   /   148
베이비박스와 입양을 주제로 작업하는 시각예술가 정우미 "먼저 우리 사회가 그 여성들을 유기"
▲  정우미 작가
ⓒ 이소림

아이를 입양했다. 아이가 집에 오던 날 정우미(38)씨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아이의 생모가 아이에게 남긴 이 편지를 곧바로 펼치지 못했다.

"막 이렇게 책장 넘기듯 쉽게 열지 못했어요."

아이는 옆에서 울고 있었다. 편지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됐을 때도 한참을 망설이다 펼쳤다. 내용보다 먼저 읽힌 것은 분위기였다.

"정신없는 와중에 애써서 눌러 담은 마음이 느껴졌어요."

편지에는 죄책감과 미안함과 자기 비하의 문장이 반복됐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아이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자기의 자격을 따지는 글이었어요."

정씨는 이 편지가 생모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라고 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작은 창고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정씨는 이 편지를 소재로 사운드 작업을 했다.

그녀는 평소 아이의 목소리를 자주 녹음해 둔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도 아기 목소리는 남기 때문이다. 그 녹음 중 옹알이 소리와 울음소리 거기에 사랑해라는 말소리를 이어 붙여 편지를 읽는 것 같은 소리를 구성했다.

결과물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됐다. 남편조차 알아듣지 못했다고 정씨는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결과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편지 속 자책과 미안함이 담긴 부분은 지직거리는 잡음으로만 남았고 사랑한다는 말만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이 소리가 엄마의 더 가벼워진 삶, 자유로운 삶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정씨는 이 작업이 자신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하나의 전제와 닿아 있다고 했다. 생모가 그날의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이전 작업에서도 다뤘다. 베이비박스와 입양기관 앞길 위에 시아노타입(cyanotype, 청색 인화)으로 인화한 이미지를 놓고 입을 맞춰 물로 헹구듯 씻어내는 퍼포먼스였다. 그녀는 이 행위를 친생모에게 보내는 노크라고 불렀다.

"얼굴을 드러내도 괜찮은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작업의 대전제예요. 아무리 두드려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아이에게 자신감 줄 수 있는 입양 말하기

▲  정우미 개인전 포스터
ⓒ 정우미

정우미씨는 시각예술가다. 평면 회화, 소리, 퍼포먼스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하며 미술사를 복수전공했다. 대학원은 미국으로 넘어가 순수 미술로 마쳤다. 대학 시절 독립영화 미술팀과 연출팀으로 일하다 협업 중심의 작업 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혼자 하는 작업을 하고 싶어 순수 미술을 전공으로 택했다.

2016년 귀국한 뒤에는 몇 년간 미술 비전공자들의 유학을 돕는 개인 사업을 했다. 결혼과 겹친 이 시기에는 작업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녀는 2022년 사업을 정리하고 작업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그녀의 작업은 하나의 주제로 좁혀졌다. 베이비박스와 입양이었다.

2022년 이후 그녀가 열었던 세 번의 개인전은 모두 이 주제와 연결돼 있었고 이번에 그녀는 베이비박스와 관련된 공간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갤러리에서 동시에 전시를 앞두고 있다. 작가 정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6월 24일 주사랑공동체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정씨는 2018년 결혼했다. 결혼 전부터 심한 생리통 때문에 피임약으로 증상을 조절하고 있었는데 이 약을 끊는 일이 두려웠다고 했다. 남편을 만날 무렵에는 이미 자궁 관련 진단을 받아둔 상태였다. 그는 연애를 시작한 지 보름 만에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꺼냈다.

"아기를 안 낳는 게 좋을 것 같고, 만약 아기를 갖고 싶으면 입양도 선택지일 것 같다고 했어요."

정씨는 스스로를 김칫국 마시는 스타일이라고 표현했다. 연애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차라리 빨리 아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였다. 결혼 후 정씨는 자연임신을 시도했다. 시험관 시술처럼 적극적인 방법은 아니었다.

"보통 입양 커뮤니티를 만나면 다들 시험관을 몇 번씩 하시잖아요. 근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임신은 되지 않았다. 큰 고민 없이 아이 낳기를 포기했다. 정씨는 이 무렵 아이 낳은 걸 완전히 접는 것에 짧게나마 슬픔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내려놓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미련이 크지 않았다고 했다.

입양을 결심한 뒤, 정씨는 자궁 수술을 받기로 했다. 사실상 자연임신이 불가능해지는 결정이었다. 기관 상담사는 이 일로 상실감이 클 것이라며 부부가 함께 상담받기를 권했다. 정씨는 이 권유가 예상과 달랐다고 말했다.

"저는 사실 상실감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 고통에서 해방되는 게 너무 좋았고, 새로운 삶을 얻은 해방감 때문에 수술 끝나고 오히려 생기 넘치게 살았어요."

정씨는 이 선택을 두고 스스로 차선책처럼, 플랜 B처럼 입양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를 낳지 못해서 입양했다는 서사보다, 아이에게 더 건강하고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입양 말하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가 자라면 그 편지를 보여줄 계획

▲  정우미 작가와 아들 운트를 보육원에서 길러준 양육자가 서로 마주한 모습이다.
ⓒ 정우미

아이의 생모가 남긴 편지가 정씨에게 그토록 무겁게 다가온 데는 이유가 있다. 그녀는 아이를 만나기 전 스스로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이를 원한다고 기관에 먼저 요청했다.

"저희가 몇 명 하게 될지 모르니, 일단 베이비박스로 하자고 했어요."

정씨는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이들은 생부모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입양을 원하는 부모들이 상대적으로 덜 찾는다는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 반면 생모가 입양기관에 직접 데려다준 아이들은 기다리는 부모가 더 많았다.

기관에서는 그녀에게 입양기관을 통하면 생모의 지병이나 조부모 병력까지도 알려줄 수 있지만, 베이비박스는 알려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보가 없다는 것은 이 편지가 왜 그토록 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아이의 뿌리에 대해 남은 거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정씨가 입양기관에 처음 전화를 돌린 때는 2020년 정인이 사건 직후였다. 한 곳은 사건 이후 모든 입양 절차가 멈춘 상태라고 했다. 다른 한 곳은 결혼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정씨는 남은 두 기관 중에 아이 중심의 입양을 강조한 기관을 선택했다.

그 뒤로 자궁 관련 수술과 남편의 대학원 졸업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절차가 유예됐다. 서류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범죄경력조회, 의료 기록, 소득과 재산 증빙까지 서류만 24종이었다. 처음 입양기관에 전화를 건 시점부터 따지면 아이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3년이었다.

2023년 5월이었다. 정씨는 서울의 한 보육시설에서 8개월 된 남자아이를 처음 만났다. 면회를 신청하러 간 사무실 벽에는 아이들 사진이 붙어 있었다. 궁금했지만 그 아이가 누구인지 물어볼 수 없었다.

▲  아들 운트와 정우미 작가
ⓒ 정우미

아이 이름은 운트다. 향기를 뜻하는 한자 운(芸)과 트인다는 의미의 한글 트를 붙여 정씨가 직접 지었다. 첫 만남 이후 아이가 완전히 집으로 온 날은 두 달 뒤였다. 지금은 사라진 입양전제위탁이었다. 그 사이 정씨 부부는 일주일에 최대로는 네 차례씩 보육시설을 찾았다. 법원의 최종 허가는 그다음 해 2월에 났다.

정씨는 아이가 자라면 그 편지를 보여줄 계획이라고 했다. 공개입양을 택한 그녀는 아이가 자신을 낳은 생모를 궁금해하면 반가울 것 같다고 했다. 더불어 그녀는 언젠가 편지를 쓴 사람을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생모가 스스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질문에 정씨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르게 말했다.

"그분들이 왜 자기를 숨겨야 했느냐고 하면, 그 책임이 그분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애초에 그분들을 내팽개치듯 하지 않았다면, 더 용기 내서 아이를 키우거나 지원받을 가능성이 더 많았을 수도 있어요. 우리는 흔히 유기된 아이, 아이를 버린 엄마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먼저 우리 사회가 그 여성들을 유기했다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정우미씨는 7월 26일부터 베이비박스 공간에서, 8월 1일부터는 서울 망원동의 한 갤러리에서 동시에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연다. 경기도 문화재단의 창작공간 임차료 지원사업을 통해 마련된 전시회다. 베이비박스 공간에서는 아이를 키우기로 한 엄마들이 머무는 자립관에서 음식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열고, 망원동 갤러리에서는 베이비박스에서 날린 풍선이 흩어지지 못하고 모이는 모습을 다룬 작업을 선보인다. 정씨는 전시 기간 내내 두 공간을 오가며 관람객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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